▲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달석 에너지정보통계센터 소장.

[에너지플랫폼뉴스 지앤이타임즈] 지난 수년간 계속된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 증가는 세계 석유시장의 공급과잉을 야기해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급격한 국제유가 하락의 주요 원인이 됐다.

타이트오일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셰일오일 생산으로 지난 4년 동안 미국의 원유수입은 24% 감소했고, 석유제품 수출을 고려한 전체 석유의 순수입은 무려 47%가 감소했다.

유가 하락으로 셰일오일 생산이 점차 둔화되겠지만 셰일오일이 미국의 해외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세계 석유공급의 중심지인 중동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가치가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셰일오일이 가져올 수 있는 여러 가지 지정학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중동의 중요성은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최대 석유소비국인 미국의 석유수입 감소는 이미 석유의 교역구조를 변화시키고 있고, 나아가 국제
질서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셰일오일 생산으로 미국이 우선적으로 원유수입을 줄이는 곳은 나이지리아와 앙골라 등 주로 아프리카 산유국들이다.
그 이유는 셰일오일이 비중이 낮고 유황분이 적은 고품질 원유로서 아프리카산 원유와 유사한 성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등 남미 중질원유의 수입도 점차 줄이고 있다.

아프리카와 남미 산유국들은 미국의 원유수입 감소에 대응해 세계 주요 석유소비 지역인 유럽과 동아시아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당연히 수송거리가 짧은 유럽 시장에 대한 판매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로 인해 유럽 석유시장이 과거해 비해 경쟁화되면서, 주로 유럽 국가들에게 원유를 판매하던 러시아는
판매처의 다변화가 필요하게 됐다.
러시아의 판매처 다변화 대상은 석유소비 규모가 크고 지리적으로 인접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이다.
러시아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인 자원민족주의 경향 속에서 에너지를 지렛대로 삼아 유럽은 물론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해 왔다.

하지만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으로 그러한 러시아의 대외 전략은 크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프리카와 남미 산유국들은 유조선 운항거리가 먼 중국과의 석유교역도 확대하고 있다.
새로운 판매처를 확보해야 하는 아프리카·남미의 산유국들과 자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해외 원유도입이 긴요한 중국의 상황이 서로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전략상품인 석유의 거래 확대는 상호간의 정치적 관계 강화로도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대의 에너지 공급처인 중동의 국제관계는 어떻게 변화될까?
셰일오일 생산으로 미국의 석유수입이 줄고 있지만 중동산 원유의 수입은 크게 줄지 않고 있다. 멕시코만에 밀집된 미국 석유정제시설의 상당 부분이 비중이 높고 유황분이 많은 중질·고유황의 중동 원유를 처리하기에 적합한 시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그동안 법적으로 금지해왔던 원유 수출의 허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데, 그것은 국내 공급이 국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셰일오일 생산으로 인한 경질·저유황 원유의 공급과잉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석유수입량은 점점 늘어나 지난해 미국의 석유 순수입량을 추월했다.
중국의 원유수입 증가는 수송비가 적게 드는 중동 원유에 대한 의존도 상승을 의미하며, 중국의 입장에서 중동 원유의 안정적 도입은 에너지안보는 물론 국가안보와도 직결된 문제가 될 것이다.

결국에는 미국이 에너지 확보 경쟁은 물론 잠재적 패권 경쟁의 대상인 중국에 대한 견제 수단을 중동 원유에서 찾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미국의 중동지역에 대한 전략적 가치는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과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중동에서 동북아시아로 이어지는 해상 원유수송로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오바마 집권 2기 들어서 미국이 다시 중동 중심의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남중국해 난사군도를 둘러싼 중국과 필리핀 사이의 분쟁에 간접적으로 관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전체 원유수입의 84%를 중동지역에 의존했다.
셰일오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의 G2 대결 구도가 에너지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우리나라의 핵심적인 에너지 공급처인 중동지역의 정세 불안은 더 심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중동 산유국과의 양자 및 다자간 협력 등 에너지외교를 더욱더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달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서 중동 산유국들과 다양한 협력 방안을 마련한 것은 장기적인 에너지안보 전략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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