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석유협회 이원철 총괄본부장
[에너지플랫폼뉴스 지앤이타임즈]

지난해 정유업계는 사상초유의 한 해를 보냈다.

정유부문에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 석유산업 자유화 이후 17년만에 처음으로 법인기준 적자를 기록했다.

비정유부문에서 거둔 9300억원의 흑자에도 불구하고 정유부문에서 2조3000억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해 법인 기준 1조4000억원의 적자를 보였다.

그 결과로 국내 신용평가사는 정유사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강등해 정유사는 자금조달 여건이 더욱 어려워지는 등 원가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실적부진이 유가급락기의 일회성으로 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지난해 대규모 적자의 원인을 분석해 보면 3분기 이후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재고평가손실과 정제마진 하락이 주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일시적인 재고평가손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유사의 핵심인 정유부문 영업이익률이 근래 10년간 계속 하락하고 있으며 특히 2012년부터는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실적 악화추세가 매우 가파르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러한 추세는 다음과 같은 정유업계의 대외환경 변화를 고려해 볼 때 앞으로도 개선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매우 염려된다.

첫째 중국 등 세계 석유수요는 둔화되는 반면 美 셰일오일 및 OPEC산유국의 석유공급 증가로 국제 석유수급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국제유가는 상당기간 배럴당 60달러 내외의 저유가 추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정제마진 또한 세계 석유수요 둔화와 공급증가에 따라 단기간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하류부문에 집중된 국내 정유사로서는 향후 어려운 시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국내 정유사의 주요 수출지역인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역내에서 향후 약 270만b/d의 정제시설 신증설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외 석유수출 여건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중국, 일본 등에 대한 직수출 보다는 최근에는 싱가포르 등 수출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석유 무역중계국으로의 수출이 증가해 수출채산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일본, 중국으로의 수출물량이 각각 11%, 9% 감소한 반면 싱가폴에 대한 수출량은 30% 늘어났다.

셋째 지난해 납사를 제외한 석유수요는 전년에 비해 1000만 배럴 감소한 4억3000만 배럴을 기록하는 등 199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초에 확정된 정부의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조차 2035년의 석유 의존도를 26.9%로 전망해 향후 1차에너지원에 대한 석유의 비중은 점차 낮아져 내수 기반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요인들 외에도 대내외 환경 규제강화, 전기와 바이오에너지 같은 대체에너지원 개발과 보급 등으로 정유산업의 미래 성장성은 불투명하다.

하지만 석유는 여전히 국가에너지 안보와 직결되는 전략물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기초원자재로서도 국내 산업 발전의 핵심적인 토대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무역수지 개선과 수출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고, 수송용 연료로서 국민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에너지원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한편 저유가 기조하에서도 중국은 산유국 지원확대를 통해 석유자원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멈추지 않는 등 전 세계적으로 자원 확보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처럼 안정적인 에너지산업의 기반구축이 미래 국가경쟁력을 가늠하는 주요한 척도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요 원유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가 안정적인 석유수급 및 이러한 중차대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정유산업에 대한 경쟁력 강화 여부는 어느 때 보다 중요한 국가적 아젠다가 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정유산업은 석유 위기시를 포함한 과거 수 십년 동안 안정적인 석유공급을 통해 국내 경제발전과 국민생활의 안정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대외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구조조정, 예산감축, 원유 조달선 변경 등 업계 자체만의 노력만으로는 이러한 역할과 기능을 더 이상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산업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정도로 경영악화가 구조화된다면 결국 국가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이제는 정유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과거 고유가 당시 기획된 경쟁촉진 위주의 석유정책을 대외환경 변화를 고려해 시장친화적인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원유관세 부과 등 해외 정유사에 비해 역차별 받고 있는 조세정책도 하루 빨리 동등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정유사들이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시설투자 등에 나설 수 있도록 투자 관련 각종 인센티브도 확대해야 한다.

지금이 이러한 정책전환을 통해 빈사상태에 빠진 정유업계를 지원할 ‘골든타임’이다. 과거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한 번 놓친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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