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이 발표되었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정보 공개와 의견 수렴, 공개적인 논의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다. 또한 정국도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에 갑작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보도 자료에는 소관부처를 중심으로 관련 협회, 단체, 주요기업 등 민관 협의를 통해 로드맵을 도출하였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11월 1일 국회기후변화포럼과 11월 23일 기후변화전문가포럼에서 제한적인 논의를 거쳤을 뿐이다. 그나마 국회 포럼에서는 국무조정실이 숫자를 공개하지 않았고 기후변화전문가포럼도 녹색성장지원단이 비공개로 진행하였다.

절차보다 더 심각한 것은 로드맵의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부문별 목표 감축량은 정부안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국제시장 메커니즘을 통해서 2030년 배출전망치의 11.3%인 9600만톤을 감축한다고 한다. 또 국내에서는 산업부문은 부문 배출전망치(BAU)대비 11.7%를 감축하고 발전부문은 19.4%를 감축한다.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이 우려했던 내용이 고스란히 로드맵에 담겨져 있다.

먼저 국가 감축 로드맵에서 국내 감축과 국외 감축의 칸막이를 없애야 한다. 유엔에 제출한 한국 정부의 국가별 기여방안은 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이라는 목표만 제시되어 있다. 국제시장 메커니즘은 온실가스 감축을 비용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어떤 당사국이든 취할 수 있는 수단이다.

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문별로 감축 목표가 설정되면 국제시장 메커니즘은 민간에서 감축 주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감축 옵션의 하나로 활용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국제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감축량을 미리 정한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배출권 확보 비용이 크게 상승하는 한편 개도국에 책임을 전가한다는 도덕적 비난을 자초할 수 있다.

둘째 산업부문을 빼놓고 온실가스 감축을 하겠다는 로드맵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정부는 2030년 배출량의 약 57%가 산업부문에서 배출될 것으로 전망한다. 산업부문의 기여가 없다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마침 국내 산업은 매출에 비해 에너지소비량이 많은 비효율적 구조이기 때문에 감축 잠재력이 선진국에 비해 큰 편이다.

그런데 정부는 에너지다소비업종의 로비에 떠밀려 산업부문의 감축 부담을 수송과 건물부문에 떠 넘기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산업계의 감축 부담을 일반 국민에게 전가하는 결과이며 이행과정에서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셋째 전환(발전)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금보다 줄여야 한다. 전환부문은 부문별 간접배출량을 포함하면 국가 배출량의 38~40%를 차지한다. 그런데 전환부문은 감축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2030년 배출량이 더 늘어난다.

전환부문 배출전망치를 부풀리면서 반대로 감축률은 낮게 잡은 결과이다. 이는 세계 각국이 전력의 탈탄소화를 중심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추세와 역행하며 2030년에도 지금처럼 석탄발전이 전력생산을 주도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특히 저성장 경제에서 산업용 전력수요가 전망에 비해 줄어들면서 별도의 조치가 없어서 발전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달성될 수도 있다.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의 핵심은 에너지집약적인 중화학공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있다. 로드맵에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한 구상이 포함되어야 한다.

산업계의 근시안적 이해에 치우쳐 밀실에서 졸속으로 감축 로드맵이 만들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과 이행은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경제와 사회를 저탄소 구조로 전환하는 계기이며 저탄소 산업과 기술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또한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어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발전의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와 가스발전을 확대하기 위한 전력믹스 전환 방안이 수립되어야 한다. 오히려 정부는 석탄발전을 확대하고 해외 석탄발전 건설을 지원하여 국내외의 비난을 사고 있다.

전환부문 온실가스 감축은 탈탄소화 재생에너지 전환의 기회이자 동력이다. 탈석탄 청정에너지 전환 정책 기조를 확립하고 전환부문 감축 잠재력을 현실화하기 위해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다양한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의 공개적 논의를 거쳐서 로드맵을 수정·보완하길 기대한다. 정치적,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지 못한 감축 로드맵은 권위와 실행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광범위하고 충분한 의견 청취와 공개적 논의를 거쳐서 인지도와 지지도가 높은 감축 로드맵이 작성되어야 한다.

폭넓은 의견 수렴과 공개적인 논의 절차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담하는 주체들의 감축 목표에 대한 순응력을 높이고 실현가능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에너지칼럼 기고 :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이상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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