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등록증 없이 주유소로부터 불법 유통 받는 판매소 ‘기승’
정량미달용기 제작해 일반 가정집 대상 판매…소비자 피해 극심
비상식적 등유가격, 의심해야…판매소업계, ‘최저 생존가격제’주장

▲ 수년 간 방치된듯한 이 판매소는 문이 잠겨있고 석유저장 시설도 없어 영업을 하지 않는 것같지만, 여전히 일반판매소로 등록돼 있다. 불법업자가 임대한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지앤이타임즈 박병인 기자] 등유는 쓰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형편이 좋지 않은 저소득층의 ‘상징’과도 같은 연료다.

등유의 주 소비자들은 소위 달동네·산동네나 농어촌 등 에너지 보편적 이용에 제약을 받는 계층이다.

등유 판매업자들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갈수록 좁아지는 시장파이에 새로운 시장개척활로 역시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등유업계가 요구하고 있는 등유개소세 폐지, 폐업지원 등 복지정책에 무관심한 상태다.

업계에서 통용되는 표현을 빌리자면 현재의 등유시장은 ‘죽어가는’ 시장이다.

그런데 등유시장을 더욱 궁지로 몰고 가는 환경은 불법업자들이 진입하기 쉬운 시장이라는 점이다.

우선 등유판매소는 임대료가 저렴해 불법업자들이 접근하기 쉽다. 여기에 등유 판매소들의 주 거래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골목의 빈민가나 공사장들이라 단속 자체가 어렵다.

설령 단속되더라도 불법업자들의 처벌수위가 약하기 때문에 언제든 불법판매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사회적 하위계층들인 등유 판매업자들과 소비자들을 두 번 울리는 등유 불법판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아봤다.

▲ 불법판매업자가 주유소-판매소간 수평거래가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주유소로부터 기름을 공급받고 있다.

◆ 사업허가 없이 주유소·하치장서 등유 불법유통

폐업한 등유판매소를 헐값에 임대해 사업허가를 받고 불법판매를 일삼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사업자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업자들은 자신이 소유한 개인판매차량과 함께 지입형태로 주유소에 위장 취업한다.

고용자인 주유소 사업자들은 이들에게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등유를 판매하는 대신, 사업자등록증이 있어야만 설치할 수 있는 카드단말기를 불법사업자에게 제공하면서 부당이득을 취한다.

불법 등유판매업자들은 높은 가격에 등유를 유통 받았기 때문에 정량미달판매 등 각종 편법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게 된다.

소위 ‘하치장’이라고 불리는 소규모 도매사업자들에게 등유를 유통 받는 경우도 있다. 주유소와 마찬가지로 위장취업 후 카드단말기를 제공받는 대신 등유를 비싸게 유통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 성북구에서 석유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자는 “업계상황을 파악해보니 사업자등록증 없이 불법적으로 등유를 유통 받는 판매소들이 대략 50여 곳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추측했다.

▲ 불법용기에 등유를 가득채웠음에도 불구하고, 16리터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법정용기는 가득채웠을 시 20리터까지 주유된다.

◆ 등유 판매용기 조작해 서민들 등치기도

법정용기를 사용하지 않고 작은 용량의 용기를 제작해 소비자들을 속여 정량미달 판매하는 행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정집의 경우 업계에서 흔히 부르는 ‘말통’단위로 배달 주문하는데, 대체적으로 용기에는 눈금이 따로 표시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대략적인 눈짐작으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다. 정량인 20리터 법정용기에 가득 채워왔는지, 정량미달 불법용기에 가득 채워왔는지 소비자들은 판단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정량주유 여부는 확인을 못한 채, 시세보다 비상식적으로 싼 가격에만 현혹돼 등유를 구입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이다.

실제로 서울 성북구에서 가정집을 대상으로 등유 말통배달을 하고있는 한 사업자가 종로지역에서 유통되고 있던 불법 용기를 입수, 가득 채워보니 16리터밖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등유배달을 다니면서 업계 현장상황을 보면 불법 용기를 활용해 정량미달 판매하는 불법업자들이 상당수 된다”며 “16리터짜리 불법용기를 사용하면서 20리터로 양을 속이는 대신 리터당 100원 가량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불법업자들이 정가, 정량에 판매하는 선량한 등유 판매업자들과 일반 소비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상황으로, 적극적인 단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공사장 관리자와 ‘짜고 치기’ 정량미달 판매

홈로리 차량을 운영하는 등유판매업자들의 경우 일반 가정집보다는 공사장, 공장 등에 등유를 납품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공사장 또는 공장의 현장관리자와의 짜고 치기 식 정량미달판매가 많다.

예를 들어 한 공사장에서 등유 100리터를 신청했다고 가정하면, 등유판매업자는 기계에 80리터만 주유하고, 현장관리자는 100리터를 주유한 것으로 결제한다. 이렇게 발생한 20리터의 불법이득은 판매업자와 현장관리자가 나눠가지는 식이다. 일종의 횡령인 셈.

홈로리차량으로 등유를 납품하고 있는 한 업자는 “거래처를 다니다보면 정량미달판매와 관련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듣는 상황이 등유판매업자와 현장관리자가 짜고 정량미달 판매하면서 불법이윤을 나눠가지는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짜고 치기 식 판매가 많은 가짜경유 불법유통과 유사한 경우다.

그 외에도 홈로리 차량의 미터기는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대놓고 정량미달 주유하고 미터기를 꺼버리거나, 리모컨을 사용해 미터기를 조작하는 수법도 만연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시세이하 낮은 등유가격, 의심 필요…업계, 최저 생존가격 지정 주장

등유업계에서는 판매자가 시세보다 상당히 낮은가격에 등유를 판매하는 경우 소비자들이 한번쯤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 등유 판매사업자는 “석유업계는 마진율이 낮아 판매 가격격차가 크지 않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상식적으로 싸게 판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특히 등유판매사업자들의 경우 주유소와 달리 배달비용도 포함이 되는데, 도매가보다 싸게 판다면 소비자들이 한번쯤은 의심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등유판매업계에서는 정부에서 ‘최저 생존가격’을 지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등유 도매가에 최소의 유통비용, 인건비를 반영해 최저 생존가격을 지정해 달라는 것이다.

등유판매사업자들이 최저 생존가격이하로 팔지 못하게 하면 굳이 단속을 통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불법판매업자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석유일반판매소협회 강세진 사무총장은 “등유시장에 만연해 있는 정량미달판매는 판매업자간 지나친 가격경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폐단”이라며 “정량미달판매는 소비자들과 선량한 판매업자에게 피해를 끼쳐 정부는 지나친 가격유도 정책을 지양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불법업자들은 도매가격보다도 낮은 비상식적인 가격을 책정해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정량미달판매 등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며 “정부는 등유판매업계와 협의해 최저가격을 정하도록 하고, 그 이하 가격으로 판매하는 불법업자들을 제재해 불법 석유사업자로부터 선량한 판매업자와 소비자를 지킬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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