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는 기업 성적표이다.

그런데 전력 공기업 한전의 실적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숫자들로 채워져 있다.

한전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31조9,921억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매출원가는 44조8,778억원에 달했다.

한전은 한수원과 발전 5개 자회사, 민간 발전 기업, 구역 전기사업자들이 생산한 전기를 전력거래소를 통해 구매해 일반 고객에게 판매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매우 단순한 매출 구조로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더 싸게 전기를 구매해 더 비싸게 판매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한전은 전기 구입 원가를 의미하는 매출 원가 보다도 낮은 가격에 전기를 판매하면서 올해 상반기 14조3,03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영업손실률이 44.7%에 달했다.

100원짜리 전기를 44원 손해 보며 팔았으니 부실 경영의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

가스 공기업 가스공사의 올해 2분기 미수금은 5조1,000억원에 달했다.

해외에서 천연가스를 도입해 내수에 도매하고 있는데도 가스공사는 5조 넘는 미수금(未收金)을 깔고 있고 가스비 외상을 지고 있는 주체는 바로 소비자들이다.

이런 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 공기업 공시에서 확인된다.

실적 공시에서 한전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정부의 전기요금 규제로 전기요금 변동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가스공사 역시 기업 공시에서 ‘도입 원가와 가스 판매 요금 간 차이인 정산 손익을 정부 승인을 거쳐 차기연도 요금 산정에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필수 에너지인 전기, 가스 소비의 공공성 차원에서 원가 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하도록 정부가 요금을 규제, 관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언젠가는 그 차액을 소비자 요금에 부과해 회수하겠다는 메시지가 동시에 담겨 있다.

발전 연료를 포함한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데도 소비자들이 저렴하게 전기와 가스를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상 요인을 요금에 전가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한전과 가스공사의 재정 부담이 한계상황에 달해 이제는 그동안의 외상금을 본격적으로 회수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실제로 정부는 물가 부담에도 불구하고 10월 전기, 가스 요금을 일부 인상했고 내년에는 그동안 요금에 반영하지 못했던 비용까지 회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원가 이하로 책정된 전기, 가스 요금은 소비자의 ‘빚’으로 남아 갚을 일만 남았다.

이런 부작용을 없애고 에너지 요금의 가격 기능 정상화를 꾀하겠다며 정부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각종 선거 등과 맞물린 정치적 결정으로 원가 인상 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현재 진행중인 국정감사에서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 그리고 전기요금 인상 책임을 놓고 여야간 정쟁이 한창이다.

그런데 그 책임은 인상 요인이 있는데도 소비자들을 위하는 척 요금 반영을 미루도록 압박하고 결정한 정권과 정치권 그리고 정부가 져야 한다.

11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한전 정승일 사장은 ‘전기요금 정상화를 위해 연료비 연동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한전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정치권과 정부가 에너지 요금에 개입할 없도록 차단하고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 요금이 시장 원리에 맞춰 조정되고 효율적인 소비로 연결될 수 있다.

뻔한 답을 외면하고 정치권은 니탓 네탓 공방만 하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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